하늘을 나는 홍범도 장군 유해 국내 봉환
뛰어난 사격술로 봉오동 전투의 영웅이었던 홍범도 장군
강제이주로 광복을 보지 못한 채 머나먼 이국땅, 카자흐스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드디어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됐다.
조선 최고의 스나이퍼 ‘홍범도 장군’평양 출신으로 평범한 포수로 활동한 홍범도는 1907년 정미의병 함경도 의병을 이끌며 역사의 전면에 나선다. 1920년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 무장 투쟁의 영웅이 된다!
봉오동전투는 1920년 6월 4일, 지린성 화룡현 삼둔자(三屯子) 전투에서 비롯되었다. 그날 새벽 30여 명 독립군 소부대는 국내 진공작전으로 삼둔자를 출발하여 두만강을 건넌 뒤 함북 종성 강양동 일제 헌병 순찰소대를 격파하고 돌아왔다. 이에 격분한 일제는 조선 독립군을 토벌하기 위해 '월강 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를 편성했다.
1920년 6월 7일 ‘봉오동 전투의 시작’
당시 조선 독립군 연합부대는 항일 명장 홍범도(洪範圖)를 사령으로 한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安武)의 대한북로독군부군, 최진동(崔振東)의 군무도독부 이흥수의 대한신민당이 연합해서 일본군 157명 등을 사살하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봉오동전투 당시 독립군의 전사자는 4명이었으니, 대단한 전과였습니다.
봉오동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본은 간도지방의 항일운동을 근절하기 위해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세우고 훈춘사건을 조작합니다.
일제가 중국 마적을 매수해 훈춘 일본 영사관을 고의로 습격해, 13명의 일본인과 1명의 조선인순사를 살해하게 됩니다. 이를 빌미로 약 2만 명의 일본군을 간도 일대로 처들어 옵니다.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야마타 토벌대 간의 10월 21일 오전 8시 교전이 발생합니다. 청산리 골작기 백운평 부근에서 일본군 1,000여 명 전사, 독립군 피해는 전사 20명, 중상 3명 등 대승을 거둡니다. 이어 이도구, 완도구에서 홍범도 총사령관이 지도하에 또 다른 대승을 이끕니다. 10월 22일 천수평 전투 일반 기마중대 120명 전멸, 독립군 2명 사망, 17명 경상 같은날 어랑촌 전투 김좌진, 홍범도 연합부대가 공동으로 일분군을 섬멸 일본군 연대장 비롯해서 사망자 1000여 명 독립군 100명 사망, 실종 90명, 부상자200여 명
일본군 2000여명이 전사한 무장 독립 운동사 최고의 성과를 이루어냅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은 극도로 불리하게 돌아갑니다. 간도참변, 자유시 참변 등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여건은 나날이 나빠졌고, 이때 홍범도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국 러시아에 정착하게 됩니다.
1937년 7월 중일 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당시 소련은 조선인과 일본인 구분이 어렵고 조선인의 존재로 인해 중일전쟁에 휘말리는 것이 경계가 되어 스탈린은 연해주의 조선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지시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강제 이주를 당한 조선인은 이주 대비를 하지 못했고, 혹한의 추위에 이주 당하면서 숱한 사고로 노인,어린아이의 목숨을 많이 잃게 됩니다. 그리고 홍범도 역시 연해주 조선인과 함께 카자흐스탄으로 끌려와 움막집에서 살며 고려극장 경비 생활로 생계를 이을 만큼 힘든 말년을 보내다가 1943년 7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으며, 해군은 214급 잠수함(1천800t급) 7번 함의 함명을 '홍범도함'으로 명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서울 종로구 배화여자고등학교에서열린 3·1절 101주년 기념식에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늘 저는 온 국민이 기뻐할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분의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이라며 "협조해주신 카자흐스탄 정부와 크즐오르다 주 정부 관계자들, 장군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주고 묘역을 보살펴오신 고려인 동포들께 깊이 감사드린다"라고 덧붙이며"독립운동가 한분 한 분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우는 일이자,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를 열어갈 힘을 키우는 일"이라며 "정부는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뜻을 기리고 최고의 예우로 보답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에선 설민석은 “우리는 영웅으로서 젊은 홍범도만 기억하고 있다”며 홍범도 장군의 안타까운 최후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번 기회에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에 대한 국가적 배려, 고려인들에 대한 역사적 이해는 제자리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역사는 곧 우리들의 역사이므로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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